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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홀드 니버의 인간 이해와 목회적 상황 본문

신학

라인홀드 니버의 인간 이해와 목회적 상황

유기농막대사탕 2023. 8. 2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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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홀드 니버가 주장한 기독교 현실주의의 배경이 되는 니버의 인간 이해와 목회적 상황

 

기독교 현실주의란 윤리가 진정으로 기독교적이기 위해서는 윤리 자체가 삶의 실재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기독교적으로 해답을 줄 수 있는 윤리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니버의 고민은 기독교의 진리가 삶의 현장 가운데서 실제적으로 접목될 수 있는 윤리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니버는 성경의 진리에 기초한 인간의 이해를 다시금 재검토해야만 했다. 그에게 있어서 인간은 언제나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였고,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 인간은 윤리를 논하기 전에 먼저 살펴야 할 대상이었다.

니버는, 인간은 그 자신에게 문제다라고 말함으로서, 인간의 본성에 관해 기술한다. 인간에 관한 고전적인 그리고 현대적인 견해 모두는 이것들의 제한적인 견해 때문에, 문제점을 양산했다. 인간을 단지 마음, 이성, 혹은 정신이라는 견지에서 정의한다면, 자연에 관한 인간의 연루가 묵살된다. 이간을 단지 자연 혹은 자연적 과정이라는 견지에서 정의한다면, 인간의 자의식과 자기 초월적 자유는 무시된다. 니버는 말하기를, 이러한 두 가지 제안에 대항하여, 성서적 견해는 인간을 육체와 정신의 통합체, 그리고 자유와 피조성의 통합체로 전망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기독교적 견해는 전술한 실수를 피하여 인간에 관한 견해들이 함지하고 있는 진리들을 통섭한다. 니버는 이러한 기독교적 견해를 그의 책 전반에 걸쳐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견해 속에서 인간관을 분류하는데, 고전적 인간관, 성서적 인간관 그리고 이 두 가지 인간관의 혼합으로 나타난 근대적 인간관이 그것이다.

 

고전적인 인간관

 

고전적 인간관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듯이 인간이란 본래 이성을 가졌다는 독특한 입장에서 이해되어져 왔다. 당시의 합리주의와 이원론에 영향을 받은 이러한 고전적인 인간관은 그러한 입장을 빌리는 모든 인간관을 한정해왔다. 그리고 그 결과 합리주의는 이성적인 인간을 신적인 것과 동일시 하는 것이 되었고, 이원론은 육체를 악과 동일시하고 마음이나 정신을 선과 동일시하는 인간관이 되었다. 고전적인 인간관은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자연주의적 요소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들은 모두 인간을 자연의 일부라고 해석했다.

 

신학적 인간관

 

니버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임과 동시에 자신을 경모하는 죄인이라는 사유 하에서 인간에 관한 그의 성서적 견해를 전개시켰다. 그리스 철학의 영향 아래서, 하나님의 형상과 인간의 이성을 동일시 하려 했던 많은 초대교부들과는 다르게, 어거스틴을 추종하던 니버는 하나님의 형사를 인간의 전체적 자아의 자기 의식적 그리고 자기 초월적 특성으로 전망했다. 동시에 이러한 자유하고 자기 결정적인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안에서 유한하고 죽을 운명의 피조물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은 자유하고 동시에 유한하다.

니버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모호하다고 간주했다. 한편으로, 인간은 자연안에 새겨진 피조물이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자기 초월이라는 확정할 수 없는 행위 안에서 그들의 피조성 위로 솟아오를 수 있는 능력을 소지한다. 인간은 자유하며 동시에 속박되어 있고, 제한적이며 동시에 무한하다. 기독교 신앙의 대안적 견해들은 인간의 피조성만을 강조하거나 혹은 다른 측면을 무시하고 인간의 자유성만을 강조한다. 한편으로 성서적 신앙은 인간의 피조성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인간을 동시에 강조한다. 인간은 자연적인 영역과 영적인 영역에 동시에 속해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은 `하나님 행세`를 하려고 한다. , 인간 자신을 만유의 중심에 두려고 한다. 인간은 죄인이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자신들의 적당한 중심을 발견하는 것에 대해 자유하기 때문에, 인간이 자기 중심적이 되어야 하는 절대적인 필요성은 없다. 그러나 자아 중심성은, 아마도 인간의 자유와 유한성 사이의 긴장이 유혹의 상황을 생성시키기 때문에, 압도적이 된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죄의 관계성은, 집단적인 차원에서 동료 인간들에게는 부정의로써 표출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교만한 자아-신격화로 표현된다. 죄된 이기주의는, 개인 보다는 집단 안에서 훨씬 더 선포되어진다. 무엇이든지 궁극적으로 간주되는 것과 동일시되는 집단적 자만은 자만의 최종적인 표현으로 구성된다.

이상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니버는 인간을 유한성을 지닌 자연으로서의 인간과 자기 초월적인 자유를 가진 정신으로서의 인간이라는 양면에서 이해하고 있다. , 인간은 자연과 관계하면서도 자유이며 제약을 받으면서도 초월하는 역설적이며 모순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 니버의 인간 이해의 출발점이다.

 

근대적 인간관

 

근대적 인간관은 특별히 인간 본성이 선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근대적 인간관이 인간 본성의 악의 문제에 대해서 낙관주의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근대적 인간관은 기독교적 개념에서 말하는 죄인으로서의 인간관을 거부하게 되는데, 거부하게 되는 이유로서 니버는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 번째 거부이유는 근대 문화가 인간을 합리적인 능력의 고유성을 지녔다고 생각하므로 악의 근원은 개인의 충동과 필연성 속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이성적 능력을 증가시키면 악에서부터의 해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거부 이유는 근대 문화가 인간을 자연과 관련시켜 생각한다면 인간의 영적인 삶을 자연과의 조화, 평온 완전한 일치에로 전환시킴으로서 악마적 혼돈에서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자연의 혼돈에서 정신의 조화로 또는 정신의 혼돈에서 자연의 조화로 나아감으로써 성취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적 인간관에 대해 니버는 인간 구원에 대한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써 이것은 인간의 삶 속에서 너무나 요원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오직 기독교적 문화의 토대 위에서만 그 해결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니버의 목회적 상황

 

니버의 인간관을 요약하면 악은 인간 본성 안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인간 내부의 갈등에서 사회 내의 갈등이 야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인간관을 갖게 된 이유에는 그의 목회적 상황이 깊게 관여했다.

1915, 니버는 자동차 산업이 번영을 누리던 디트로이트시의 베델 복음주의 교회에서 그의 목회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이 교회에서 13년간 목회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 기간은 그가 일생 중 가장 귀중한 체험을 했던 시간이었다.

1914년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었고 다음 해에 세계대전이 일어나게 되면서 미국의 생산력은 극도로 상승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때에 그가 디트로이트에서 보게 된 것은 대량생산을 위한 기계화의 현장이었다. 특히 니버는 아메리칸 유토피아를 내세운 핸리 포드 자동차 공장에서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이 시기에 니버는 사회복음 이라는 온화한 사회주의에 경도되었으나, 그는 이내 그기 순진무구함(인간과 사회에 대한 죄의 깊이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라 칭하였던 것과 다투기 시작했다. 니버의 디트로이트 경험은 니버가 그의 인생역정 속에서 투쟁해야 하는 문제점들을 보여주었다. 디트로이트시는 니버가 교구목사에서 공적인 저항가로 옮겨가게한 배움의 연구실이 된 것이다.

자동차 노동자 공동체에 목사로 봉직하면서, 니버는 현대 산업화 사회의 냉담한 부정의에 충격을 입었다. 니버는 기독교 교회가 사횢거 무능력 때문에 사람들의 요구로부터 소외된 것을 발견하고는 동일하게 충격에 휩쌓였다. 산업사회의 추악한 실재, 특히 다른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교회의 평온한 무관심에 관한 니버의 초창기 통찰은 그의 목회 사역을 변화 시켰다. 이후 니버는 자유주의자로 그의 직업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자유주의에 대한 가장 열열한 비판가 중의 한 명이 되었다.

니버는 개신교 자유주의가 무능하고 적합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고, 계몽주의로부터 유래된 가치체계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자유주의는 도덕적 낙관주의에 관한 조약한 가르침인 부르주아 관념주의의 경건, 이상사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동일시하는 것, 그리고 기독교 신앙을 공적인 삶의 자리에 이식시킬수 있는 가능성을 단순히 신뢰하는것에 불과하다. 1927년에 출간된 니버의 책, 문명은 종교를 필요로 하는가?는 그의 디트로이트시 경험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며, 산업 문명으로 야기된 비인간화에 대한 니버의 경고를 반영한다.

디트로이트 시에서, 니버는 어떠한 형태의 자유주의도 산업 문화나 집단적 사회안에서 생명의 야만적 사실들에 관련지을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이기적 이익으 ㅣ타락한 요소는 인간의 최상의 의도와 혼재된 채 존재한다. 진보에 대한 가능성은 늘 타락에 대한 가능성과 동행한다. 인간은 늘 불완전하고 역사는 미완성이다. 자유주의의 비적합성으로부터 벗어나서, 니버는 인간과 하나님에 대해 신학적으로 취약한 견해를 비판했고, 하나님에 대한 보다 더 `초월적인`견해와 집단적 인간에 대한 보다 더 `실재적인`견해를 요구했다. 선한 것을 향한 인간의 도덕과 이성의 가능성에 대한 자유주의의 타당한 통찰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 반면, 니버는 자유주의의 유토피안적이고 개인주의적 사회전략은 거부했다. 자유주의 정신은 수용하되, 자유주의의 교의에 대해서는 등을 돌렸다. 이런 종류의 비판을 통해서 니버는 미국 신학계에 기독교 현실주의로 알려진 운동을 소개했고, 그는 이 운동의 탁월한 지도자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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