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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서의 이해 감상문 본문
도마복음서의 이해 감상문
도마복음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도마복음은 독자로 하여금 신약에서 등장하는 예수와는 다른 또 다른 예수를 만나게 함과 동시에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생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마복음은 개인적인 이해보다는 전문적인 이해가 필요하며, 이에 다음에서는 `도마복음의 이해`의 저자를 가이드 삼아 그가 전달하는 내용을 요약하고 그에 대한 소감을 적어보려고 한다.
낙 함마디 문서와 영지주의
영지주의가 기독교 이단이며, 인간의 사악함에서 비롯된 사도적 가르침이라는 견해는 초대교회 이단 연구자들로부터 비롯되어 19세기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19세기 말 종교사학파를 구성하였던 부쎄트와 라이첸슈타인과 같은 학자들은 영지주의와 관련해서 기독교 이단으로 영지주의라는 현상을 이해하는 과거의 견해를 폐기할 것을 주장했을 뿐 아니라, 영지주의는 발전하는 새로운 종교와는 별개의 것이고 그것에 영향을 미쳤던 자체적인 종교운동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영지주의는 최초의 신의 일부가 갈라져서 인간세계를 구축했다는 신화의 개작으로 이해됐기 때문이다.
특히 불트만은 자신의 해석학적, 역사적 연구에 이라크 남부 습지대에 살아가던 만데아교도들의 문서들을 포함시켰다. 그들의 경전에는 구원종교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고도의 세례의식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인간 영혼 속에 있는 빛의 파편들을 신적인 세계로 재결합시킬 것을 약속하는 의식체계였다. 불트만은 바로 이것이 기독교의 등장을 가능케 한 영지주의의 신화적 전승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불트만의 이러한 접근 방식은 요나스에게도 영향을 주었는데, 그는 영지주의를 특정한 신화적 표현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후기 고대의 정신`에 대한 일반적인 표현으로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영지주의에 대한 연구는 1945년 낙 함마디 문서의 발견으로 극적인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사상적 계파인 발렌티누스파와 셋파의 다양한 문서들을 통해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영지주의에 대한 가장 풍부한 자료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낙 함마디 문서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가장 큰 의미는 영지주의는 이단이라는 주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 데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영지주의는 처음부터 기독교의 한 종파가 아니라, 기독교의 사상이 통합되고 바울에 의해서 선포된 복음주의가 탄생한 4세기 이전에 다양한 사상과 철학이 혼재된 사상을 바탕으로 이미 형성되었다는 것을 도마복음은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지주의는 이단이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다.
영지주의가 이단이라는 주장은, 초기 기독교 교부들이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아타나시우스파가 주장한 삼위일체론이 탄생할 당시, 당시의 시대를 관통하던 지적, 철학적 거대 담론인 영지주의에 대한 교부들의 위기감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2천 년 전의 기독교는 선민의 구원 개념이 교회를 통한 구원의 개념으로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깨달음과 체험을 통해 직접 신과 하나가 된다는 구원 개념을 가진 영지주의는 교회를 허무는 이단의 사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 도마복음의 개론적 이해
낙 함마디 문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뽑는다면 그것은 제2권의 두 번째 문서인 도마복음이다. 도마복음은 그 제목에 `복음`이라는 단어가 붙어있지만 신약성서의 복음서들과는 차이가 많다. 아마도 가장 놀랄만한 차이점은 도마복음서는 말씀이 `예수께서 말씀하신다`라는 전형적인 공식에 의해 시작될 뿐 무언가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도마복음에서 분명한 것은 예수의 말씀이나 비유의 전승일 뿐이다.
말씀들의 수집물인 도마복음은 고대세계에서 독특한 것은 아니었다. 에피쿠루스나 에픽테투스와 같은 유명한 철학자들의 제자들은 그들의 선생님들의 말씀이나 통찰력 있는 담화들을 그노몰로기아에 수집했다. 유대인들, 이집트인들, 페르시아인들, 그리고 지중해의 여러 민족 역시 `현자의 말씀`이나 `지혜의 말씀`이라는 수집물들 속에 그들의 현인들의 잘 알려진 지혜를 모았다. 유대적 전통에서도 그러한 모음집들이 `솔로몬의 지혜서`나 `예수 밴시락의 지혜서`같은 신구약 중간기의 작품들이나 잠언에서 발견된다.그러므로 그러한 수집물 가운데 예수의 말씀을 모은 것은 그 시대와 무관한 활동은 아니다.
도마복음을 누가 어디에서 언제 쓴 것인지 확실히 답할 수는 없다. 제목(도마)과 서두(유다)에 대한 경쟁적인 주장 우리로 하여금 그 이름들을 이 본문의 저자와 동일시 하는데 자신하지 못하게 한다. 또한 도마복음이 시리아의 도마전승을 이어받은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보다 앞선 것인지에 따라 특정되는 위치가 다를뿐더러 말씀들의 수집물이라는 도마복음의 자체적 성격 때문에 정확한 연대를 추정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와같은 의문에도 불구하고 도마복음이 흥미로운 발견물인 이유는 역사적 예수 연구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도마복음과 공관복음서 모두에 존재하는 말씀들의 전승사를 우리로 하여금 더 잘 이해하도록 하는데, 도마복음이 기여하는 점은 중요하다. 도마복음은 그러한 말씀들에 대한 하나의 독립적인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초대 교회의 다양한 상황 속에서 그 말씀들이 전승과정에서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보기 위한 비판적인 힘을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다. 도마복음이 말씀이나 비유와 관련해 항상 더 원본에 가까운 해석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마복음으로 인해 우리는 지금 도마복음과 공관복음서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말씀들이 더욱 초기의 해석에 도달하도록, 공관복음서와 함께 사용되는 또 다른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또한 도마복음은 예수의 가르침의 발전을 우리로 하여금 보다 잘 이해하도록 돕는다. 도마복음의 예수 말씀들과 공관복음서의 병행구절을 비교하면, 전승에 대한 공관복음서적 측면에서의 특색으로서 두 가지가 두드러진다. 하나는 예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관심이며, 다른 하나는 묵시적 세계관의 가설이다. 특히 두 번째 특색은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서 가장 최신의 경향에 의하면 매우 중요한 것임이 증명되었다고 한다. 거의 한 세기 동안 대다수의 유럽 학자들은 예수가 이제 막 세상이 종말을 고하리라고 믿는 묵시적 예언자라는 견해를 고수해 왔다. 그러나 도마복음에는 공관복음서의 특징인 묵시적 경향이 제외된 채, 공관 복음서와 병행하는 구절들이 수십 개가 나타난다. 이전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예수 전승이 움직일 가능성을 보여준 것에 덧붙여, 도마복음에서 이러한 묵시의 부재는 결국 예수 자신이 이러한 묵시적 세계관을 결핍했는지 아닌지의 질문을 제기케 한다는 것이 최근 북미 학자들의 주장이다. 도마복음은 이처럼 역사적 예수에 대한 공관복음서의 입장을 문제 속으로 불러들이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다른 방식들로 예수를 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과 논쟁점을 열어 놓았다.
믿음과 깨달음은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갖는다. 기독교에서 믿음이란 의미엔 단순한 의지적 고백과 결단 뿐만이 아니라 그 결단과 신념 너머의 신비를 보려는 것이다. 그리고 깨달음은 자아의 해방에 대한 경험인데, 이 해방은 십자가를 통한 발견으로 나타난다. 그렇기에 도마복음이 기존의 공관복음들과 다른 노선을 갖는다 해도 해방을 가르친 예수의 말씀 속에서 발견되는 그 신비적 현시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깨닫는데 도마복음은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3. 도마복음의 언어분석
낙 함마디에서 발견된 영지주의 문헌은 무엇보다도 기독교의 기원과 초대 기독교 역사 연구를 위한 매우 중요한 종교사적 자료이다. 그런데 이 문서가 그리스어가 아닌 콥트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이 문서의 발견 이후 서구 신학자들은 이 문서를 연구하기 위해 콥트어를 연구하여야만 했고 점차 신약학에서도 그리스어 못지않게 콥트어 연구의 중요성이 인정되고 있다. 이 방대한 양의 새로운 문서는 그동안 이집트학의 일부로만 여겨졌던 콥트어 연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킬만큼 콥트어와 그 방언에 관한 연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가치와 의의를 지닌다.
도마복음의 콥트어 가운데 북부 이집트 방언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크밈 방언과 뤼코폴리스 방언의 영향인데, 이는 모음 조직과 철자, 각종 어형에 나타나지만 반드시 일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보다 더 특징적인 것은 구문론적 특성으로 접속절의 용법이나 목적적의 용법은 도마복음, 나아가서 낙 함마디 문서 제 2권 전체의 독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특이한 것은 동사 변화근간의 중복 현상으로 다른 방언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영지주의 문서의 독특한 어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을까. 우선 분명한 것은 이 문서가 발견된 낙 함마디 지역에서 번역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지역은 주로 표준 사히드 방언이 지배하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가능성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본래 다른 방언으로 기록된 문서를 사히드 방언으로 개작한 것이거나 아니면 문서 전승과정에서 상당기간 사히드 방언이 통용되는 지역이 아닌 지역에서 유포되었다가 그 지역 방언의 독특성이 유입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남겨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요한복음은 사복음서를 이외에도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1945년 발견된 도마복음은 이를 증명하고 했다. 이를 두고 예수의 말씀이 아닌 인도의 경전 중 하나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내용적 측면으로나, 도마복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언어적인 특징은 이것이 기독교 이전 영지주의적 내용을 내포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기에 이를 인도적 전승이라고 단정 짓고 정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모든 역사는 새로운 사료로 비교, 대조하고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나는 신학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렇기에 자료의 한정성에서 낙심하던 기독교에게 낙함마디 문서들, 특히 도마복음이 가져다주는 연구의 활력은 반드시 필요하며, 또 의미있는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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