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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구원론 본문

신학

루터의 구원론

유기농막대사탕 2023. 8. 2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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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루터 신학의 출발점 : 십자가의 신학

 

종교개혁을 위하여 루터 자신이 사용한 신학적 용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신학`이란 개념이다. 이 개념이 뜻하는 바는, 기독교 신앙과 신학의 중심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 있다는 것으로, 계시론적 전망에 있어서 `자연 신학``자연 계시`를 거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루터는 하이델베르크 논쟁의 열아홉 번째 결론에서 창조된 것으로부터 비가시적 하나님의 존재를 이해하고 아는 자가 신학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와 세상을 향하신 그의 뜻이 고난과 십자가에 표현되어 있다고 이해하는 자가 참된 신학자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터는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며, “십자가가 모든 것을 시험한다라고 강변한다.

 

II. 구원론의 전제들

 

루터의 구원론에는 아주 명백한 신학적 전제가 있다. 그것은 그의 인간 이해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사탄, 마귀의 권세 아래 있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선한 의지에 사로잡혀 있든지 둘 중 하나이다.

 

1.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

 

하나님은 인간을 의인으로 창조하셨지만, 그러나 아담의 타락과 함께 인간의 `본래적인 의`가 상실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타락한 정욕은, 감각적 육체적 영역만을 둘러싸고 있는 것만 아니라, 인간의 인격 깊은 곳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루터는 인류는 온통 죄 덩어리로서, 전적으로 타락하여,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루터에게 있어서 아담의 원죄는 개별적 인간이 짓는 `행위 죄`의 뿌리고, `행위 죄`는 원죄의 열매 혹은 결과다. 그러나 루터에 의하면, 최초 인간, 아담을 포함하여 인간이 짓는 죄 중에서도 가장 주된 죄는 바로 불신앙이다. `불신앙의 죄`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형벌을 받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의 현실적인 실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초 인간, 아담으로 하여금 `불순종`의 죄를 계속해서 범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사탄, 마귀``시험과 유혹`이라고, 루터는 생각하였다.

인간은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태어날 때부터 끊임 없이 `행위의 죄`를 범하게 되는데, 그것은 `사탄, 마귀`의 끊임없는 `유혹과 시험`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루터 구원론의 신학적 전제가 되는 또 하나의 `요소``사탄, 마귀의 실재와 그의 유혹과 시험`이다.

 

2. 사탄, 마귀의 권세 아래 있는 인간의 실존

 

루터는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탄, 마귀`의 실재를 인정한다. 그에게 있어 ``은 전 인류를 포괄하는 권세 그 이상이다. ``은 개별적인 인간의 의지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의지를 지배하는 그 어떤 `인격적 의지`, 더 자세히 말하면, 하나님께 대항하도록 인간을 초월하여 지배하는 의지 및 그 영향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루터에게 있어서 인간은,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 있는 존재다. 인간은 하나님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싸우는 싸움의 한복판에 있다. 예컨대 인간의 등 위에 마귀가 올라타면,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하여 죄악의 길로 가고, 하나님의 성령이 올라타면, 인간은 선한 길로 인도함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스스로 `사탄,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될 수 없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인간은, 스스로 `사탄, 마귀`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구하게 된다. 그때에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믿고 의지할 때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속의 은총`이 믿는 자에게 주어지게 되고, 그렇게 해서 인간은 `사탄, 마귀`의 권세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루터가 예수님을 `사탄, 마귀`의 권세를 이기신 `승리자`로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3. 속박된 인간의 의지

 

루터가 인간의 `속박된 의지`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적 확신으로 확고히 주장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인간이 자유로운 의지의 결단에 따라 율법을 행함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사건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자유의지`를 강조할 경우,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의 결단`에 따른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 루터가 생각하기에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자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는 인간의 `의지``사탄, 마귀`에 속박되어있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의 결단에 의해서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 없고,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의 구속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제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III. 하나님 은총으로 주어진,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1. `악마`를 이기신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권세``악마의 권세` 사이에 있는 인간을 구원 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악마`를 진멸하셨다는 것이, 루터의 성경 이해다. , `악마`에게 노예가 되어있는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셨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악마의 권세에 잡혀 있는 `인간`을 탈취하신다. 그래서 `사탄, 마귀`와 그의 악한 역사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활동에 굴복되었다. 그 결과 `사탄, 마귀는`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로 사용되게 되었다.

따라서 루터에게서 `악마`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 `악마`는 독자적으로 인간을 지배하거나, 통치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마`는 항상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악한 일`, `하나님께 대항하는 일`을 스스로 꾀한다. 이러한 내용을 가장 잘 다루고 있는 것이 `욥의 시험`이다. 루터는 `사탄, 마귀`에게 `욥에 대한 시험`을 허락하신 것은, `사탄 마귀`를 단지 `수단과 도구`로 사용하신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루터는 말한다. “하나님은 도구를 통해서 행하신다.”

 

2. 의인화가 아니라, 의인이다.

 

루터는 사도 바울의 증언(3:28-4:25)을 근거로, `인간은 자신의 의로 의롭게 될 수 없으며, 죄인을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만이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루터는 여기서 `여기다, 간주하다, 판단하다, 계산하다`는 개념과 `계산에 넣다, 돌리다, 전가하다, ~의 탓으로 돌리다`의 개념을 아주 중요하게 다룬다. 그는 로마서 4:5에서 `믿음을 여기다``여김을 받다`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의롭다 하시는 분을 믿으면, 의롭다 하시는 분의 의가 믿는 자에게 전가된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므로 루터에게서 `칭의`의 개념은, 결코 `믿음의 공적`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앙`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전제로서 공로를 대신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만일 `신앙`이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이해된다면, `믿음`도 보상을 기대하는 `공로행위`의 하나가 될 것이다. 루터에게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함을 받는 신앙`은 하나님의 은총을 믿고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지, 결코 자신의 행위를 정당하게 인정받고자 하는 종교적 욕구가 결코 아니다.

 

3. 구원의 방편: 말씀과 성례전(세례와 성만찬)

 

루터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구원의 방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듣고, 믿음이 생긴 사람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되고, `성만찬`에 참여하게 된다고, 루터는 말한다. 그래서 루터는 `세례제정`의 성서적 근거로서, 마태복음 28:19와 마가복음 16:6을 들고 있다.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세례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 그리므로 루터는 결정적으로, 로마서 6:4를 근거로, `세례`가 구원의 방편`임을 확정한다.

이제 끝으로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담지하고 있듯이, 성만찬도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 ``을 담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그는 `성만찬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실제로 현존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우리가 `성만찬에 참여할 때`, 소위 `거룩한 교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가 우리가 되고, 그래서 죄는 더 이상 계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만찬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에 `참여`함으로써,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IV. 결론 : 객관적 은총에 의한 과정 속에 있는 구원

 

이상의 루터의 `구원`에 관한 진술들을 고려해 볼 때, 그의 구원론은 `객관적 속죄론`이라고 특징지어 이해할 수 있다. 즉 그의 `구원론`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타락한 모든 인간에게 값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의해서 주어지는 `객관적`이고, `보편적` 속죄다. 이러한 `속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각 개인의 `믿음`에 의해서 역사 속에서 실현되어 가는 `과정 속에 있는 구원` 혹은 되어감 속에 있는 구원`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루터에게 있어,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항상 의인이며 동시에 죄인 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객관적 은총에 의해서 선행적으로 이루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사건`없이, 타락한 인간의 `자유의지`로는 `사탄, 마귀`의 속박으로부터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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