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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 4-5세기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성례전 이해 비교 본문

신학

주후 4-5세기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성례전 이해 비교

유기농막대사탕 2023. 10. 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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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후 4세기와 5세기의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성례전 이해 비교분석

 

성례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현존을 나타내는 외적이고 가시적인 표징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은혜다. 그러나 주 후 4세기와 5세기에 서방교회 또는 동방교회는 체계적인 성례전 신학을 형성해 내기 위한 시도를 거의 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이 그것을 하찮게 보았다기 보다, 당시 성례전은 말씀 예전과 함께 초대교회 예배에 있어 중요한 요소 차지하고 있었기에 굳이 따로 기술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성례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 시작했다. 주로 어거스틴에 대해 살펴보면, 그는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것 신비한 것들을 표징할 수 있는 자연적인 것이나, 인간의 관습을 다 성례전이라고 보았고, 좁은 의미에서는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 명령하신 세례와 성찬만을 성례전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와 함께 그는 이러한 하나님의 것들을 성례하는 매개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의 처음은 세례의 매개인 물에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성령님의 역사에 대한 중요성으로 관심이 옮겨가게 된다.

 

성례전들 속에 담겨있는 은혜는 하나님의 은사로서 집례자 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사상과 은혜의 효력은 집례자에 의해서 반복되는 하나님에 의해서 규정된 문구와 결부되어 있다는 사상, 이 두 가지 이론은 오랜 세월을 거쳐서 이른바 성례전에 관한 사효설을 이루었다. 즉 성례전들은 그것들이 나타내는 은혜를 실제적이고 자동적이게 실현하는 표징들이라는 이론을 만들어 내게 된다.

 

그러나 동방은 이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당시 동방에는 아주 다양한 견해들이 유포되고 있었기에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파, 마니교도, 몬타누스파, 파울루스파가 행하는 세례는 전적으로 무효라고 말하며, 성례전은 그것을 집전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서방에서는 도나투스파와의 논쟁에서 분파주의자들에 의해서 거행된 성례전이라도 유효하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이단들이 행하는 성례전도 효력이 있다는 서방의 입장은 성례전 자체가 끼치는 은혜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서방은 재세례와 재서품 또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키프리아누스와는 달리 성례전의 유효성과 실효성을 구별한다. 그는 기술적인 유효성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성례전을 받은 사람이 그것과 적절하게 결부된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사효론을 주장했지만, 동시에 성례가 유효하다고 해서 그것이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실효하는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은 교회의 세례는 교회 밖에도 존재할 수 있지만, 복된 삶의 은사는 오직 교회 안에서만 발견된다.”라는 그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세례

앞에서 성례전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고찰하였으므로, 이제 각각의 성례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세례에 대해 알아보면, 키릴루스는 세례를 목욕의 개념으로 이해하며, 세례받은 자는 죄들, 즉 세례 이전에 범해진 모든 죄의 사함을 받는다고 말했다. 둘째, 세례는 성화라는 적극적인 축복을 전달해 주는데, 키릴루스는 이러한 축복을 신자의 영혼의 조명과 신성화, 성령의 내주, 새 사람을 입는 것, 영적인 거듭남과 구원, 은혜 위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양자 되는 것,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 하늘의 유업을 물려받을 권리로 묘사한다. 그러면서 그는 죄사함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허용되지만, 성령의 주입은 세례받는 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이루어진다고 지적한다. 세 번째 내용은 세례는 신자의 영혼에 봉인을 각인한다는 것이다. 물이 몸을 깨끗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은 영혼에 인을 친다. 이러한 인침은 세례를 받는 순간에 일어나고, 그 결과로서 세례받는 사람은 성령의 임재를 느끼게 된다.

 

서방교회에서는 옵타투스는 대홍수를 세례에 대한 모형으로 삼아서, 세례의 물에 잠긴 죄인은 죄의 더러움으로부터 씻김을 받고, 원래의 순수성으로 회복된다고 주장하였다. 사람의 창조라는 개념이 세례 속에 녹아있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표현에 의하면, “세례는 그 죄가 행위이든 말이든 생각이든, 원래의 죄들이든 더해진 죄들이든, 알고 범한 것이든 모르고 범한 것이든, 우리의 모든 죄, 절대적으로 모든 죄를 씻어준다.” 하지만 세례가 세례받는 그리스도인들을 장래에 범죄 하는 것으로부터도 보호해 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유아 세례에 대해서도 동방과 서방의 의견이 달랐다. 그리스 교부들은 죄책의 의미에서 새로 태어난 아이들도 유아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이해했으나, 서방교회에서는 암브로시우스가 유아 세례는 유아들을 그들이 물려받은 죄책으로부터 건져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하늘나라를 열어주기 위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제롬은 그러한 암브로시우스의 사상을 반영해서 일단 유아들이 세례를 받으면, 그들은 죄로부터 자유로워지지만, 그때까지는 유아들도 아담의 죄책을 짊어진다고 가르쳤다. 이렇듯 세례의 적극적인 효과들과 관련해서 초기에는 죄의 사함에 강조점을 두었지만, 이후에는 성령의 인침의 사건으로 보는 것과 같이 세례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견신례 또는 도유식

세례 안에 포함되던 견신례는 이후로 갈수록 세례와 구별되는 성례전으로서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동방교회에서 도유는 언제나 필수적인 절차였고, 아타나시우스와 예루살렘의 키릴루스는 사도들의 안수에 의한 성령의 수여에 관하여 말할 때 그것을 그들이 알고 있는 도유식과 결부시키지 않는다. 사도 헌장에서는 안수는 비록 주교의 도유와 결합 되어 있긴 하지만, 상당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와 테오도레투스 같은 저술가들은 안수를 언급할 때 아마도 단순히 도유식에 있어서 주교의 행위를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방교회에서 안수는 도유와 더불어 계속해서 입교 절차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옵타투스는 안수를 통상적이고 정상적인 것으로 보았고, 안수의 원형을 예수의 수세 시에 성부 하나님이 예수에게 내린 축복 속에서 발견하였다. 제롬은 안수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하고 성령의 충만한 수여를 세례에 돌렸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적인 이론은 안수가 있든 없든 도유를 통해서 성령이 수여된다는 것이었고, 아우구스티누스도 주교들이 안수를 행할 때 그것은 단지 사도들의 선례를 따르는 것뿐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안수를 더 중시하였던 서방교회에서는 안수의 성경적 권위를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의 안수를 행했다고 말하고 있는 구절들 속에서 찾았고, 그 효과는 당연히 성령의 수여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세례 후에 사제들에 의해서 시행되는 도유와는 구별되는 견신례는 주교의 본래적인 직무에 속하는 것으로서 주교가 보혜사 성령을 수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견신례 또는 도유식에 관한 신학과 세례에 관한 신학 간에는 상당한 정도의 혼동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견신례와 도유식이라는 두 가지 의식은 성령의 수여를 매개하고 신자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인다. , 그들은 그것을 그리스도의 군사들을 그들에게 필요한 병기들로 무장시키고 더 큰 은혜를 나누어주는 일종의 축복으로서 이해하고 있었다.

 

-고해

주 후 4세기와 5세기의 문서들 속에는 세례 이후에 범해진 죄들을 사하는 교회의 관행에 대한 언급들이 많이 나온다. 이러한 언급 중 다수는 노바티아누스파의 엄격주의를 반박하려는 의도에 의해서 촉발된 것이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는 보속이 가진 회개의 효력 및 회개 이후의 죄 사함의 가능성을 놓고 노바티아누스파에 속한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으며, 서방교회에서는 암브로시우스가 세례 이후의 죄들을 사해 주기를 거부한 노바티아누스파의 가혹한 처사를 비판하였다.

 

암브로시우스의 동시대인이었던 바르셀로나의 파키아누스는 심프로니아누스에게 보낸 서신들 속에서 상당히 유익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파키아누스는 노바티아누스파의 입장의 핵심을 세 가지로 요약하였다. 첫째, 세례 이후에는 고해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둘째, 교회는 대 죄들을 사 할 수 없다. 셋째, 화해 이후에 죄인들을 다시 받아들이게 되면, 교회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이렇듯 세례 이후에는 죄용서가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아우구스티누스는 고해에 대해 언급함으로 이에 반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해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세례에 선행하는 고해가 존재하는데, 이 고해의 결과로서 온갖 종류의 죄들이 성례전을 위하여 사해진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이 경미한 죄들과 관련하여 기도, 금식 등등의 수단을 통해서 날마다 얻는 죄 사함이 존재한다. 셋째, 세례 이후에 범해진 진정으로 중대한 죄들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고해를 통한 권징이 존재하는데, 이것을 통해서 교회는 마치 그리스도가 나사로를 일으키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빈사 상태에 있는 죄인을 일으켜 세운다.

 

고해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에 이어서 이 시기에 존재하였던 고해의 몇 가지 특징들도 주목해 봐야 한다. 첫째, 이 시기의 고해는 그것이 이전 세기들에 있어서 소유하고 있었던 성격, 즉 오직 한 번만 행해질 뿐이고 반복될 수 없는 권징이라는 성격을 여전히 지니고 있었다. 둘째, 죄인들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화해라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고해는 계속해서 공식적이고 공적인 행위였다. 따라서 실제로는 고해의 가혹성과 고해를 오직 한 번만 할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서, 많은 사람은 고해성사를 그들의 임종 시까지 미룸으로써 자신의 범죄가 공적으로 알려지는 것을 최소화하였다.

 

-성찬

초대교회에서 희생 제사와 화목 제사로서의 의미를 갖던 성찬은 당시 눈에 보이는 성물들과 그것들이 나타내는 실재 간의 구별을 강조하였던 상징설과 떡과 포도주 속에서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화체설로 혼재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상징적언어들이, 떡과 포도주가, 부재 하는 실재들에 대한 단순한 지표들 또는 징표들로 여겨졌다는 것을 함축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들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는 실제로 현존하는 실재들에 대한 표지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거의 모든 곳에서 이러한 성례전에 관한 인식은 성찬의 성물들이 주님의 몸과 피로 화체 된다고 보는 더 대중적이고 생생하게 물질주의적인 이론에 땅을 내어주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 또한 그의 동시대인들과 선배들에 의해서 주장되었던 실재설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성찬에서 우리가 먹는 몸은 엄밀하게 말해서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몸과 동일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서, 그리스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으로 묘사한다. 첫째, 너희는 내가 한 말을 영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둘째, 성찬이 전해주는 생명의 은사는 영적인 은사이고, 먹고 마시는 것은 영적인 과정들이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 아우구스티누스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한 요지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육체적이고 물질적으로 먹고 마셔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이런 식으로 먹고 마셔지는 것은 떡과 포도주이며, 성찬 참여자는 몸과 피를 진정으로 받지만 성례전적으로 또는 상징적으로 받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조직신학회,『구원론』,대한기독교서회,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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