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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 4-5세기 그리스도의 구원사역 본문

신학

주후 4-5세기 그리스도의 구원사역

유기농막대사탕 2023. 9. 3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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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후 4세기와 5세기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구원론은 크게 성육설, 고전적 속죄론, 실재설이라는 세 가지의 유형으로 나타난다. 먼저, 성육설은 구속을 성육신과 결부시켜 인간의 본성은 그리스도가 사람이 된 바로 그 행위에 의해서 거룩하게 되고 변화되고 고양되었다고 보는 것으로, 플라톤의 실재론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다음으로, 고전적 속죄론이란 우리를 지배하는 마귀로부터 그 권한을 가져오기 위해 예수님이 자발적으로 희생하셨다고 보는 유형이다. 마지막으로 실재설은 구주의 고난에 더 주목한 관점으로, 그리스도께서 죄악 된 사람들을 대속하기 위하여 공의가 사람들에게 지불하고 요구한 형벌을 몸소 짊어지고 자신의 희생적인 죽음을 통해 죄악 된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킨 것으로 묘사하는 유형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유형의 흐름은 교부시대 이전에 이미 형성되어있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동방과 서방의 구원론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먼저 동방 교부는 성육설을 통해 구원론을 주장하는 관점들이 주되게 나타난다. 아타나시우스는 인간의 본성을 플라톤적 실재론의 방식에 따라 모든 개별적인 사람들이 참여하는 구체적인 이데아 또는 보편자로 인식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에서 말씀이 인간 본성을 취해서 그것을 자신의 신성으로 뒤덮었을 때, 신성을 부여하는 그 힘은 온 인류에게 전달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사실상 성육신은 구속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 그리스도가 사람이 됨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인간이 가진 죄의 저주로부터 풀려나게 함과 희생제물로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이는 타락의 결과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채 부패하고 신음하는 인간을 그리스도가 죽음으로 건져내셨고, 신적 본성에 참여시켜 주셨으며, 생명 원리인 말씀 때문에 사망 원리가 파기되고 비 부패성의 은사를 회복하셨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4세기의 그리스 교부인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또한 성육설을 구원론으로 보았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부활에서 절정에 달하는 성육신이 인간을 시원적 상태로 회복시켰으며,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타락하여 영과 육으로 분리된 인간이 영원한 재결합을 이루도록 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는 마귀에게 속전을 지불 했다는 아타나시우스의 의견에 반하여 마귀는 무력으로 정복되었다고 주장하였으며, 크리소스토무스는 마귀의 권력 남용이 징계를 받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동방은 이처럼 대부분이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성육설로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와 달리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와 예루살렘의 키릴루스는 구원 사역을 성육설 보다는 희생 제사로서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먼저 유세비우스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자신의 것으로 삼아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스스로 받았기에, 그의 죽음은 희생 제사로의 성격을 띠며,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렸다고 보았다. 그리고 키릴루스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의 보편적 효력은 그리스도의 인격의 고귀한 가치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말하며, 그 의미를 강조하였다.

 

다음으로 동방에 이어 서방의 구원론을 살펴보면 그들의 주된 경향은 희생 제사였으나, 동방에 비해 여러 관점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이해하고 있었고, 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힐라리우스와 빅토리누스는 성육설을 주장한 교부로, 인간의 본성을 하나의 보편자로 인식하고, 그리스도가 육신을 취하였을 때, 그리스도는 육신의 보편적 이데아를 취한 것으로 보았다. 둘째로, 암브로시우스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대가로 마귀가 그 권리와 인류를 놓아줬다는 사탄과의 거래설과 함께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권리 주장이 희생 제사로 나타난 것으로 보았다.

 

셋째로, 힐라리와 암브로시아스터는 비판적 사탄과의 거래설을 주장하였으며, 이는 죄를 알지도 못한 무죄한 분을 죽임으로 마귀는 범죄 하였고, 그로 인해 권세를 상실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빅토리누스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인간을 구속하였다고 말하며 구속과 대속의 관점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이해하였다. 이처럼 서방 교부들은 다양한 관점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지만, `희생 제사로서의 예수`가 큰 흐름이 되어 전개되었다.

 

이처럼 동방과 서방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바라보았는데, 그중에서도 동방은 키릴루스의 주장을, 서방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을 주로 하여 그들의 신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먼저 동방의 키릴루스에 대해 살펴보면, 그는 성육신에 의해서 인간의 본성이 신성을 부여받았고 신적 본성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보면서, 죽음과 죽음의 원인인 죄의 문제에 대해 거론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형벌적 대속이라고 보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가 죽음을 통해 만유의 생명과 동격임을 나타내셨다고 말하며 그리스도의 인격이 지닌 무한한 가치를 역설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서방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육설과 사탄 배상설, 희생 제사를 모두 강조하였는데, 특히 희생 제사에 있어서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가 희생 제사와 화목 제사의 제물이 되어 속죄와 화목을 이루었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 사역의 모범설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는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그가 믿음과 순종의 모범을 제공하였다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속죄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동방과 서방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그들의 신학을 전개해 나가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서 집중하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서방은 인간이 가진 죄에 집중했기에 죄에 대한 구원의 답으로 희생 제사에 강조점을 두었으며, 동방은 죽음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장 본질적이고 시급한 속죄의 답을 성육신에서 찾았다.

 

그러나 계속해서 다른 곳을 바라볼 것 같던 이러한 신학적 차이점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 융화되게 되는데, 그것은 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그리스도 사역의 모범설과 키릴루스의 그리스도의 인격이 지닌 무한한 가치에 대한 것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동방과 서방 신학의 융화는 이후 아벨라르가 영적 감화설을 주장하는 데 있어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다.

 

<참고문헌>

 

한국조직신학회, 『구원론』, 대한기독교서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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