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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구원론 본문
I. 하나님의 형상
웨슬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분류하여 이해한다.
1) 자연적 형상
자연적 형상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성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으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이성, 의지, 자유는 자연적 형상에 속한다. 웨슬리는 타락 이전의 이성과 타락 이후의 이성을 구분하며, 타락 이전에 인간의 이성은 직관적으로 진리를 식별할 수 있었다. 이것의 증거로서 웨슬리는 아담이 모든 피조물의 이름을 지은 것에서 찾아낸다. 아담은 동물들을 보면서 직관적으로 식별하여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타락 이후에 인간의 이성은 더 이상 직관적으로 진리에 접근할 수 없고 감각적인 자료에 의지하여 추론할 수 있게 되었다. 의지와 자유도 자연적 형상에 속하며, 이 둘은 분리되지 않고 함께 더불어 간다. 웨슬리는 에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의지가 완전히 파괴되지 않고 부패 되었음을 인정하고, 타락 이후부터 인간의 의지는 죄악의 힘에 포로가 되어 버렸다.
만약에 타락으로 인간의 의지가 완전히 파괴되었다면, 인간의 자유와 책임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은 자유를 전제한다. 단순한 기계나 돌은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에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듯이 자유하지 않은 사람은 수동적인 존재이므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자유의지는 초자연적인 것으로서 타락한 피조물을 책임적인 존재로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물로서 자유는 양심에 민감성을 그리고 의지에는 선을 택하고 악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결국 이성, 의지, 자유는 인간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반영하기 위하여 주어진 선물이다. 이 선물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면 풍성해지지만 자기중심적으로 사용되어지면 왜곡된다.
2) 정치적 형상
정치적 형상은 이 세상을 관리하도록 인간에 부여된 능력들을 의미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정치적 형상을 지닌 것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서 청지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웨슬리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동물들도 자연적 형상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치적 형상은 창조주와 다른 피조물 사이를 전달하는 통로가 되는 특별한 책임으로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을 통하여 다른 피조물들에게 충만하게 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인간의 행동 중에서 다른 피조물들에게 반사될 때 인간성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3) 도덕적 형상
웨슬리는 하나님의 형상에서 자연적 형상과 정치적 형상에 비하여 세 번째 도덕적 형상을 가장 손상받기 쉬운 것으로 본다. 도덕적 형상은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인 거룩함, 사랑, 정의 등을 닮은 것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최고의 표현이다.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말씀과 같이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에는 사랑이 충만하였고, 사랑은 인간의 본성과 사고와 언어와 행동의 유일한 원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자비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며, 인간은 이러한 창조주의 솜씨에 의해 창조된 그러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에 도덕적 형상은 파괴되어 악마의 형상을 반영하고 있다. 도덕적 형상도 우리가 소유한 그 어떤 것이 아니며 지속적으로 창조주로부터 받아야 하고, 지속적으로 창조주에게 순종함으로써 드러내고 중재해야 한다.
II. 구원의 여정
1) 선행적 은혜
웨슬리에 따르면, 사람이 자기의 범죄에 대하여 일시적으로나마 어느 정도의 깨달음이 있다든가 혹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깨달음이 순간적으로 생긴다면 이것은 선행적 은혜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선행적 은혜는 양심과 연결된다. 웨슬리는 또렷하게 주장한다. “양심이란 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선행적 은총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많건 적건 이 선행은총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웨슬리는 양심을 하나님의 선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사람은 은총이 없어서 범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은총을 활용하지 않는 까닭에 범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이 하나님의 선행적 은혜에 의하여 구원의 여정이 시작된다.
이 선행은총이라 함은 하늘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역사,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인데 우리가 사모하면 사모할수록 점점 증가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 모든 사람을 교화하시는 빛 곧 사람에게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지시하시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 선행은총이란 성령께서 때때로 모든 사람에게 역사해 깨닫게 하시는 것 전부를 말합니다. 이런 것을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성령의 역사를 최대한 즉시 억눌러 버리거나 잊어버리거나 또는 부정합니다.
2) 칭의와 신생
칭의는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지금 그분을 믿는 죄인에게 이뤄지는 죄책과 형벌에서의 해방을 뜻하며,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신자의 마음속에 형성된 죄의 세력에서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러한 칭의의 상태에 우리가 들어가기 위하여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있다. 믿음이다. 웨슬리는 “믿음은 의롭다 함을 받는 유일한 조건입니다.” 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믿음보다는 회개가 더 요구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웨슬리는 선명하게 말한다. 회개는 “필요한 것이지만, 믿음과 동등한 정도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셨으므로 이론적으로 보아서 회개와 회개의 열매에 소홀하면 의롭다 함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회개와 회개의 열매도 칭의를 위하여 필요하다.
칭의는 “죄책을 제거하는 일"이라면, 신생은 새롭게 태어나는 거듭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다. 신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모든 영혼 안에서 역사하시는 위대한 변화이다. 칭의와 신생은 동일한 것이 아니고, 대단히 다른 성질의 것이다. 칭의는 단지 관계적인 변화를 의미하며, 신생은 실제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칭의는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외적인 관계를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한다. 그러나 신생으로 인하여 우리의 영혼의 깊은 속이 변화되며, 죄인이었던 우리가 성도가 된다. 칭의는 하나님의 호의에, 신생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를 회복시켜 준다.
3) 성화
웨슬리에 따르면, 칭의 단계에서의 얻은 의롭다 함은 우리가 실제적으로 올바르고 의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성화이다. 성화는 “우리가 죄악의 권세와 뿌리로부터 구원받아 하나님의 형상으로회복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화의 완성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으로연결되면서 구원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의롭다 함(칭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for us) 그 독생자를 통하여 행해 주신 것을 의미하며, 성화는 하나님께서 그 영으로써 우리 속에서(in us) 행해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성화는 신생에서부터 시작된다. 신생은 성화로 들어가는 문/통로로서 성화의일부분이지만 그 전체는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날 때, 우리의 성화, 즉 우리의 내적이고 외적인 성결이 시작된다.
4) 그리스도인의 완전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의 교리를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 번째로, 완전은 의도의 단순성으로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이다.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에 위배되는 그릇된 기질이 조금도 그 영혼에 남아있지 않고 그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순수한 사랑으로 지배되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 완전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서 예수께서 걸어가신 것처럼우리를 걷게 하는 것이다. 웨슬리는 이렇게 말한다. “완전에 대한 처음 생각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이요, 그가 행하신 대로 행하는 것'이었으며, 그가 품으셨던 마음 전체를 품는 항상 그가 행하신 대로 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도의 단순성과 그리스도의 마음과는 분리되지 않는다.
세 번째로 완전은 우리의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웨슬리는 1759년 연회 후에 발행되어진책에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랑에 위배되는 그릇된 기질이 조금도 그 영혼에 남아 있지 않고 그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순수한 사랑으로 지배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완전한 사람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라는 웨슬리의 설명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마음을 드리는 것이며, 우리의 모든 영혼과 몸과 본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지상에서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육체와 정신에 있어서 한정되어 있다. 완전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살아 있는 동안 과오를 범하게 된다. 결국 웨슬리는 상대적 완전과 절대적 완전을 구별하면서 절대적 완전은 죽음 후에 영화에서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지상에서 완전에 도달하여도 의식적인 죄는 범하지 않을 수 있지만 무의식적인 죄의 가능성은 남아 있고, 무지, 실수, 유혹, 연약의 상태는 남아 있기 때문에 지상에 실현 가능한 완전은 절대적 완전이 아니고 상대적 완전이다.
나가는 말
구원을 웨슬리와 같이 순간적으로 주어지면서도 선행적 은혜 칭의/신생성화-그리스도인의 완전으로 이어지는 긴 여정으로 이해한다면, 구원은 순간적인 것이면서 계속적으로 완성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구원에 있어서 전제조건은 믿음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단순히 믿음 그 자체만을 강조하지 않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강조한다. 믿음은 믿음 그 자체에 머무르지않고, 사랑으로 접속되어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사랑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집약할 수 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여 사랑을 증가/확대함으로 우리의 구원을 성취시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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