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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 성화론의 특징과 성화의 단계 본문
존 웨슬리의 성화론의 특징과 성화의 단계
I. 존 웨슬리의 성화론이 가지는 특징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 것이라고 정의할 때, 칼뱅과 웨슬리의 가장 큰 차이는, 그러한 권세가 인간의 행위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해 지속된다고 믿는가, 그렇지 않다고 믿는가에 있다. 칼뱅이 전자를 지지하는 것에 반해 웨슬리는 후자의 입장을 견지한다. 칼뱅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근거한 성도의 견인을 주장하지만, 웨슬리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바탕을 둔 타락의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하는 칼뱅의 구원론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예정에 근거함으로 한 번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타락의 가능성이 없다. 그러나 웨슬리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총에 의한 구원을 긍정하면서도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그 은혜를 저버릴 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렇다고 웨슬리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웨슬리는 하나님이 당신의 절대 주권적인 입장으로 우리를 견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속성인 사랑에 근거해 인간을 한 대상으로서 존중하신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웨슬리는 인간이 구원의 은혜를 무시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스스로 받은 구원의 은혜로부터 등을 돌릴 자유도 인정한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태어나서 하나님 나라에 도달하기까지, 인간에게는 그가 받은 구원의 은혜로부터 등 돌리게 만드는 유혹이 계속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웨슬리는 신앙 공동체 구성원들이 이러한 유혹을 이겨내고 진실한 신앙인으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바랐으며, 그렇기에 그는 성화의 길을 가야 한다고 선포한 것이다.
특히 웨슬리는 히브리서 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신도들에게 뒤로 물러나 구원을 잃어버린 채 멸망하는 일이 없도록, 믿음으로 사는 삶에 대해 강조한다. 즉 그는 성화의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죄악의 길로 돌아갈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그에게 임했던 구원을 견실하고 만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확실히 견지하고있었던 것이다. 즉 만일 인간에게 선택에 대한 자유가 없다면 성화의 길을 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기에 성화를 향한 노력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의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웨슬리가 인간이 그들의 성화를 위해 어떠한 공로를 세워야 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자유의지에 의한 진지한 노력을 설파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II. 성화의 단계
1. 초기의 성화
웨슬리는 신자가 신생을 경험했다면 그것은 성화의 문턱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 말은 신자가 신생 이후에도 성화를 향해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신자가 완전한 성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성화의 은총을 계속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웨슬리는 성화의 은총을 받기 위한 몇 가지 수단을 제시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회개이다. 그는 죄는 죄책과 죄의 세력, 그리고 죄 그 자체로 구분된다고 보았는데, 칭의는 그중 죄에 대한 책임을 해방 시키고, 신생은 죄의 세력에서 해방 시킨다고 이해했다. 하지만 칭의와 신생의 과정을 거친 신자가 온전히 거룩해진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여전히 죄 그 자체가 남아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신생을 경험한 이후에도 여전히 회개가 필수적이다. 신자 안에 있는 죄의 본성은 계속해서 존재하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방해하며 대적하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이렇듯 신생을 경험한 사람에게 계속해서 남아있는 죄의 원인이 교만과 세상사랑 그리고 자기 의지로부터 비롯된다고 보면서, 이러한 것들을 `영혼의 부패에서 나오는 악한 기질들`이라고 불렀다. 웨슬리는 신생한 사람이 예수님이 희생으로서 보여주신 크고 놀라운 사랑으로 회복되어, 원죄로부터 벗어났지만, 그럼에도 그의 영혼은 여전히 남아있는 부패와 무능은 신자의 의지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온전하게 작동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즉 회개가 필요한 이유는 이렇듯 신자로 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악한 기질들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며, 회개를 통해 신자는 그의 완전한 구원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교인들이 경건의 사역에만 집중하여 선한 행위를 소홀히 하는 것을 경계하였는데, 이것은 그가 경건의 사역은 그것이 행위로 실천될 때 비로소 변화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즉 사랑의 실천과 동행하지 않은 경건의 사역은 사변적인 경건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웨슬리가 이처럼 신앙과 삶의 일치를 중요시하며 이를 행동으로 옮겨야 함을 강조하는 것은, 성화가 신자 안에서 점진적으로 그의 본질을 변화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2. 완전 성화
웨슬리는 신자가 성화의 길을 나아가다 보면, `완전 성화`, 혹은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인간적인 무지와 실수, 인간적 한계 그리고 유혹 등에서의 무결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해서 모든 것을 안다고 할 수 없기에 구원을 제외한 많은 부분에서 실수할 수 있다. 또한 육체적인 한계와 지식의 한계와 같은 인간적인 한계들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완전에 이른 그리스도인 역시 유혹으로부터 자유할 수는 없다. 이것은 지상의 그리스도께서도 세상으로부터 유혹을 받으셨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그렇기에 웨슬리는 완벽하고 무결한 완전이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은 지상에서 완전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웨슬리는 중생한 사람이 자기 안에서 운행하시는 성령의 인도함을 따를 때, 그 안에 있는 악한 기질들이 사라지고, 비로소 영혼의 의지가 온전히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작동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음으로 악한 생각과 기질에서 자유하게 된 상태. 웨슬리는 바로 이 상태를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고 부르고 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이 요한1서 2장에 나오는 아버지의 수준에 이른 신앙이라고 말하면서 아버지의 신앙을 지닌 사람은 오직 사랑만이 가득한 상태인 사람으로 설명한다. 즉, 웨슬리는 완전에 다다른 신앙인은 그의 모든 죄가 사랑에 의해 추방되고, 그의 마음이 사랑에 의해 지배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이르렀다고 해서 더 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완전에 다다른 이라 하더라도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푯대를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웨슬리가 강조하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갈구해야 하는 목표가 된다. 특히 웨슬리는 신도의 노력을 강조하지만, 완전 성화를 그러한 노력의 부산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칭의가 믿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처럼 성화 역시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산물로서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웨슬리는 우리가 턱없이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완전 성화를 기대해야 한다고 말하고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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