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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이전의 기독교 박해 정리 본문

교회사

콘스탄티누스 이전의 기독교 박해 정리

유기농막대사탕 2023. 10. 13.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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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54-68)- 로마 정부에 의한 최초의 박해
- 바울과 베드로의 순교
- 과대 망상적 광기로 국민들의 혐오 및 로마 대화재 때에 방화에 대한 의심을 받게 되자, 기독교인들에게 혐의를 씌워 잔인한 박해를 가했다. 동물 가죽을 씌워 죽을 때까지 개에게 뜯기게 하거나, 기름 바른 옷을 입혀 기둥에 묶어놓고 불을 붙여 자신의 정원을 밝히기도 했다.


베스파시아누스(69-79)
- 베스파시아누스는 네로 사후 혼란을 초래한 제국의 내란을 평정한 업적으로 우주의 보존자라는 칭송을 받았다. 


티투스(79-81)-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예루살렘의 정복자(유대전쟁 66-73) 티투스는 부친의 뒤를 이어 79년 로마 황제가 되었으나, 2년 후에 죽게된다. 그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동생 도미티아누스가 황제 자리를 계승했고, 15년간 통치했다. 티투스 역시 지도자로서 좋은 성품을 지녀 많은 백성의 칭송을 받았고, 인류의 애인 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둘 모두 사후 국민에 의해 신격화 되었다.

 

도미티아누스(81-96) -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 그러나 도미티아누스는 인내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사후 신격화를 기다릴 수 없어 죽기전에 신처럼 대접받기를 원했다. (스스로 우리의 주이며 하나님 이라고 불리기를 원했다.)
- 안드레와 마가와 오네시모가 처형당했다.
- 요한은 밧모섬으로 유배를 당했다. 당시 밧모섬은 사형에 가까운 처벌을 받은 자들을 유배 보내는 곳이었다.


네르바(96-98)
원로원 의원이던 네르바가 권좌를 계승하여 2년의 짧은 제위 기간 동안 도미티아누스가 실행하였던 몇몇 악법을 환원 시켰고, 그덕에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석방하게 되었다. 네르바는 그후 적당한 인물들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조처를 마련하여 유능한 인물을 자기의 정식 아들로 입양 시켰다. 그가 바로 트라야누스이다.


트라야누스(99-117)
-트라야누스는 군인이며, 유능한 행정가였으나,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 무지하여 최초로 기독교를 공적으로 금지된 종교로 공포했다.
-비교적 온건한 박해를 행했지만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가 맹수의 먹이로 순교하기도 했다.


하드리아누스(117-138)

-하드리아누스와 안토니누스 피우스도 트라야누스의 정책을 답습했다. 특히 하드리아누스는 유대인에게 할례를 금지시키고,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을 건립하여 유대인의 반란을 야기시켰다. 50만 이상의 유대인, 50개의 요새와 985개 마을의 황폐화를 초래한 이 전쟁으로 인해 유대는 팔레스타인으로 예루살렘은 이교도시로 바뀌었다.


안토니우스 피우스
-폴리캅 순교
-156년에 서머나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지방 총독인스타티우스는 빌라델비아 등지에서 잡아온 11명의 기독교인들을 원형 경기장에서 야수의 먹이로 희생 시켰다. 이때 폴리캅은 밀고로 체포된 상태에 있었는데, 어릴때부터 친구였던 스타티우스는 그를 살리기 위해 신앙을 부정하라고 종용하였지만 폴리캅은 거절하였다. (86년간 나는 그분을 섬겨왔고, 그분은 나를 한번도 모른다고 한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나의 주님을 모른다고 하란말인가?)


셉티무스 세베루스(193-211)
-초기에는 친기독교적 태도로 몇 사람을 황실에 등용했고, 아들 카라칼라를 그리스도인 유모에게 맡기기도 했다. 그러나 202년 기독교나 유대교로 개종하는 행위를 금하는 칙령을 내렸고 개종하는 자들은 사형에 처했다.
-알렉산드리아와 카르타고, 로마, 고린도, 안디옥 등에서 박해가 자행되고, 화형, 태형, 참수형이 이루어졌으며, 이때 에레오니데스(오리겐의 아버지, 참수형), 이레니우스(리용의 감독)등 수천명이 순교하였다.


알렉산더 세베루스
-기독교인에게 재산도 허용했고, 만신전에 그리스도를 포용.


막시미누스(235-238)- 군인황제시대 개막
-사병출신의 군인 황제였던 그는 전왕 알렉산더 세베루스(222-235)의 기독교 관용정책을 바꾸어 박해를 시작했다. 이것은 많은 신자로 구성된 알렉산더 가문에 대한 증오심에서 나온 정치적 보복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먼저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의 박해는 기독교 전반에 대한 것이기 보다는 즉위 후,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데키우스(249-251)
-그는 한 제국, 한 종교를 모토로 삼고 옛 로마신 숭배외에는 어떤 이교도 용납지 않았다.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기독교 자체를 멸절코자 했기 때문에 교회와 지도자, 그리고 성도들을 배교시키고자 온갖 방법이 다 동원되었다. 고문, 유형, 공갈협박, 몰수를 비롯해 250년에는 제국내의 모든 국민들이 로마신에게 제사를 드려야 했으며, 이러한 의무에 대한 증명서를 받으라는 칙령을 내리기도 했다.
- 파비안(250 로마교황), 바빌라스(안디옥 감독), 알렉산더(예루살렘 감독), 키프리아누스(카르타고 감독)은 피신하고; 육테몬(서머나 감독)은 배교하고 말았다. 오리겐에 대해서는 두가지가 전해지는데, 하나는 유세비우스에 의한 것으로 250년 박해서 죽도록 고문당해 결국 253년에 순교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히로니무스에 의한 것으로 251년 석방되어 254년 두로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발레리아누스(253-260)
-그는 257년 칙령을 내려 감독, 장로, 집사들에게 로마에게 제사 드리도록 명했고, 기독교인들의 집회를 금했다. 255년 고트족 침입 당시 기독교인들이 이를 돕자, 이와 같은 반역의 행위를 근절하고 제국의 안전을 위해 기독교 견제정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258년 기독교인에 대한 처벌을 성문화하는 새롭고 철저한 칙령이 발표되었다. 교회의 감독과 사제, 집사들은 배교하지 않아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 사형에 처해졌고 원로원 의원들과 귀족들은 직위를 박탈당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동,서로마 분리 사두정치 도입
-재임초기 그는 유능한 황제였다. 그러나 퇴임전 마지막 2년간 기독교에 무서운 박해의 칼을 휘둘렀다. 그는 어머니가 노예였으며, 여러 가지 권모술수로 황제에까지 오른 인물이었으며, 아내와 딸, 시종을 비롯해 많은 신하들이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나 재임 말의 그는 다른 전임자처럼 자신을 신으로 만들고자 하는 병에 걸려 신으로 숭배받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를 부추긴 것이 바로 그의 사위 갈레리우스(305-311)였다. 303년 2월 결국 그는 기독교 탄압을 위한 칙령을 발표하고 기독교 교회와 성물, 성전을 파괴하고 기독교인의 모임을 불허한다고 공표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305년 퇴임하여 전원에서 배추를 심는 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사위 갈레리우스의 피에 굶주린 발광으로 인하여 이 평안도 오래가지 못하는데, 결국 그의 아내와 딸을 비롯해 그는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다 잃고 외롭게 죽어갔다.


갈레리우스(305-311)
-더 무서운 죽음을당한 것은 갈레리우스였다. 그는 불치의 병과 함께 언제나 두려움으로 신음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분노한 그리스도를 달래려는 심정으로 311년 기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만 측근의 배반으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

 

 

기독교가 이토록 박해 받은 가장 핵심적인 이유 두가지는 그들이 반체제적이고 반 사회적인 집단이었다는 것에 있었다. 그러나 밀라노칙령 이후 기독교는 제국에 빠른속도로 확산되어간다. 

 

제국 기독교화의 성공요인은 크게 세가지로 볼 수 있다.

 

1. 효율적인 제국의 인프라 구조
-모든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당시 로마는 하나의 제국, 하나의 언어, 하나의 교통망, 하나의 문화를 이루었기에 380년 국교화되자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다.


2. 적극적인 선포-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한 분 하나님
- 기독교인들의 확신 있는 선포는 기독교 확장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했다.


3. 홍보수단-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생활 태도
- 그리스도인들의 사랑과 순교라는 삶의 태도는 기독교인들의 증가에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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