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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자료로서 성경 본문
신학의 자료로서의 성경
웨슬리의 말과 같이 모든 기독교의 신앙은, 그 핵심이 성경에서 계시 된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서 기독교의 신앙이 어떻게 계시 되고 있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지 조금 더 세밀한 주제 안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다음에서는 기독교 신학의 원천인 성경의 정체성을 주제별로 탐구하고, 그것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1. 구약성경
우리가 오늘날 구약성경이라 부르는 책은, 유대교가 성스러운 것으로 인정한 기록의 모음이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이를 구약성경이라는 묶음이 아닌, ‘문서’나 ‘기록’으로 불렀고, 이는 이 공통된 문서의 전집이 집단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결과를 나타나게 했다. 그리고 이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히브리 성경’이다. 구약성경이 히브리어로 쓰였으며 히브리 사람들에게 성스러운 책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이름이다. 두 번째는 ‘첫 번째 언약’이다. 그들이 구약성경을 이렇게 부른 것은 그것이 포함하는 ‘구’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가치 없는 오래된 것’이라는 뜻을 피하기 위함과 동시에, 신약성경을 두 번째 언약으로 부르며 두 전집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려고 하였다. 세 번째는 ‘타나크’다. 율법서와 예언서 그리고 성문서를 뜻하는 히브리말의 머리글자를 조합해 만든 말로,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부르는 표준방식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연속성을 반영하지 않고 있기에, 유대교에서 완전한 것일지는 몰라도, 그것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견해와는 맞지 않는다.
2. 신약성경
신약성경은 마태·마가·누가·요한 이라는 네 복음서로 시작한다. 이 네 권의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부활에서 정점에 도달하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기술한다. 그리고 다섯 번째 책인 사도행전은 이러한 복음서가 당시에 어떻게 유럽으로 퍼져나갔는지에 대한 물음을 다루고 있다.
사도행전에 이어 신약성경을 이루는 부분은 서신서다. 이 편지들은 바울이 그가 세운 여러 교회를 권면하기 위해 보낸 것들이다. 그 밖에 교리와 함께, 도덕적 지침과 영적인 격려를 포함하는, 베드로와 요한이 쓴 편지, 디모데에게 보낸 두 권의 편지, 디도에게 보낸 편지 등이 있다. 신약성경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책은 요한계시록이다. 이 책은 신약에서 그 자체로 독립된 분야를 이룬다. 요한계시록은 역사의 종말에 대한 비전을 열어 보이며, 신자들로 하여 그들을 위해 마련된 새 예루살렘을 맛보게 한다.
3. 제2 정경과 외경 문헌들
우리가 사용하는 정경은 기독교 공동체의 합의를 통해 기독교 신학을 위해 권위가 있는 것으로 확정한 문헌을 가리킨다. 그러나 구약의 내용과 관련해, 히브리 성경과 그리스어, 라틴어 성경을 비교해보면 뒤의 성경에는 앞의 성경에 들어있지 않은 많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16세기 종교 개혁자들은 불가타 성서를 처음 개정한 히에로니무스의 견해에 따라 정경 성서로 인정되는 구약의 책들만이 원래 히브리 성경에 속하는 것이라 주장하였다.
4. 구약과 신약의 관계
기독교에서 성경을 구약과 신약으로 구분하게 된 배경에는 ‘언약’이나 ‘세대’라는 신학적인 틀이 있다.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해, 하나님이 전에 역사 속에서 행하신 일과 연속성을 지니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일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기독교의 기본적인 믿음이다.
그러나 마르키온은 이에 대해 신을 가혹하고 호전적인 심판자인 신과, 부드럽고 온화하고 극히 선한 신이라는 전혀 별개의 두 신으로 나누어, 구약성경이 기독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종교의 신성한 문서라고 주장하였다. 루터 또한 구약과 신약이 모두 한 하나님의 행위와 관계있으나, 율법과 은총이 완전히 대립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칼뱅은 두 성경의 관계와 관련해 명쾌하고도 전형적인 이론을 펼친다. 그는 두 성경에는 유사성과 연속성이 있고,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고 찬양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두 성경 모두 동일한 표징과 성례전을 담고 있는 것을 예로 들며, 두 권의 성경이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그는 두 성경이 경륜에서는 다르나 실체에서는 동일하다고 주장하면서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에 대해 강조하였다.
5. 정경 성서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신약성서 정경의 형성은 지속적인 수용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 역사 증거에 따르면 초기 기독교인들은 `규범이되는 문서`와 `도움이 되는 문서`를 특별히 구분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보편적인 타당성과 권위가 있는 저술들로 범위를 좁히기로 정하고, 그러면서도 지역의 교회들이 이 저술들에다 다른 자료들을 덧붙이는 것도 막지 않는 방향으로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졌다. 즉, `정경`이란 교회가 인정해야 할 권위 있는 문서와 목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기독교 세계에서 널리 받아들여 사용해 오던 문서들을 권위와 유용성에 따라 공식화 한 것이었다.
6.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용어는 복합적이고 미묘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또 여러 개념을 포괄한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용어는 예수 그리스도가 몸을 입은 하나님의 말씀(요 1:14)이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둘째, 그리스도의 복음이나 예수에 관한 선포나 메시지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셋째, 넓은 의미에서 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이와 같은 내용은 칼 바르트가 사용하는 `하나님 말씀`이라는 용어의 바탕을 이룬다. 그는 `하나님 말씀의 삼중 형태`라는 개념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구현된 하나님의 말씀, 이 말씀에 대한 성서의 증언,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앙공동체의 설교를 통한 말씀의 선포라는 세 가지 요소를 구분한다. 따라서 교회의 설교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직접적이고 유기적인 관계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는 몇 가지 난점이 있었고, 보수성이 강한 일부 개신교인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와 동일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한 바르트의 견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7. 이야기 신학
성경의 중심을 이루는 문학 양식은 이야기다. 성경은 하나님의 본성과 성품,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구속을 보여주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 신학은 이같이 성경이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본성과 성격을 `제시`하거나 표현한다. 이렇듯 이야기 신학이 이처럼 학문적 신학 안에서 큰 인기를 얻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신학을 하는 것은, 이론적인 면에서 파고드는 신학에 비해 훨씬 더 성서에 충실할 수 있다. 둘째, 성육신 이론에서 강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동시에 하나님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셋째, 성서의 이야기식 구조는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수 있게 해 주고, 상황에 대한 인간의 무지나 오해가 하나님의 시각에서 본 실제 사실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8. 성서해석의 여러 가지 방법
성서해석의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성서를 4중적인 의미로 나누어 해석하는 것과 계몽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그것이다. 먼저 성서를 4중적 의미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성서 본문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문자적 의미, 모호한 성서 구절들을 해석하여 교리 명제들을 도출하는 풍유적 의미, 성서 구절을 해석하여 윤리적 지침을 도출하는 교훈적/도덕적 의미, 그리고 장차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보이는 종말론적 의미다.
다음으로 계몽주의적 성서해석은, 성경의 초자연적 요소를 배격하는 합리적 접근법, 성서를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기록으로 다루는 역사적 접근법, 종교 일반에 대해 탐구하는 사회학적 접근법, 그리고 성서의 독특한 문학 범주들을 올바로 다루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학적 접근법이 있다.
9. 성서의 영감 이론
기독교에서 일반적으로 성서의 영감과 권위를 인정한다는 사실은 개신교와 가톨릭 양쪽에서 나온 다수의 주요한 신앙고백 문서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994년의 『가톨릭교회 교리서』 결정판에서는 하나님의 영감에 근거하여 성서의 권위를 다음과 같이 다진다. “하나님은 성경의 저자이시다. 하나님의 계시는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에 글로 담겨지고 표현되어 보존된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어머니인 교회는 사도의 신앙에 따라 구약과 신약의 모든 책을, 그 각 부분과 함께 전체를 거룩한 것으로 여기고 정경으로 인정한다. 그 이유는 이 책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고, 하나님께서 저자이시며, 또 그렇게 교회에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인간 저자들에게 영감을 주셨다.”
그러나 계몽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성경이 특별한 지위를 지닌다는 생각에 반론이 제기되었고, 이때 영감의 문제를 다른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론들이 나타났다. 첫째로, 요한 고트 프리드 헤르더는 영감을 예술적이거나 미학적 개념으로 이해했다. 둘째로, 찰스 하지와 벤저민 워필드는 자연주의적 이론을 단호히 거부하고 초자연적 영감 이론을 내 새우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감이란 성령께서 성서의 저자들에게 끼친……초자연적이고 비범한 감화력이다. 이로 인해 성서 저자들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것이 되고 그 결과 완전히 무오한 것이 된다.” 워필드가 영감 때문에 성서 저자들의 인간성과 개성이 폐기되는 것은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강조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는 “그들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것이 되고 그 결과 언제 어느 경우든 절대 오류가 없는 것이 될 만큼” 저자들의 인간성이 억눌리게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렇듯 기독교 신학의 원천인 성서와 그와 관련된 몇 가지 문제들을 살펴보았으며, 이를 통해 결국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은혜를 담은 책이 우리에게 온 것은 크나큰 축복임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웨슬리가 말했던 것처럼 성경은 우리의 모든 신앙을 계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성경을 늘 곁에 두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오직 성경만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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