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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다문화의 삶 본문
성경의 사건과 인물로 보는 다문화 속에서의 삶이란?
1. 들어가는 말
현 사회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문화적 접촉이 활발히 일어나고, 국제결혼을 통해 형성된 가족 구성원들이 늘어남에 따라 다문화 현상은 가속화되어가고 있다. 국가 역시 다양한 다문화 정책을 내어놓고 있는 것을 보자면 이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냐는 것과는 상관없이 다문화사회 속으로 진입했기에 단일 민족에 대한 집착은 더 이상 무의미하며, 이로인해 어떠한 가치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렇듯 근대화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은 교회 역시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독교인들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생각을 해야 하며,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성경을 통해 알아보려 한다.
2. 성경에서의 다문화
1) 노크리와 게르
구약성서는 이주민을 이스라엘에 일시적으로 머물게 된 외국인과 그들과 함께하길 원하는 외국인으로 구별하여 표현하며, 전자를 노크리로 후자를 게르라고 부른다. 느헤미야 13장에서 언급되는 두로 사람들을 노크리로 볼 수 있으며, 이스라엘에 거주하면서 물건을 수입하여 팔던 상인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외국인들에 대해 에스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지만 이것은 이방 여인과의 결혼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야훼를 떠나게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다. 구약이 언제나 외국 여성과의 결혼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은 창세기 41장에 언급되는 요셉과 애굽 여인의 결혼과 출애굽기 2장에서 모세와 미디안 여인의 결혼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이스라엘이 외국인에게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것은 그들의 정체성을 지켜야만 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외국인을 일컫는 또 다른 말인 게르를 살펴보자면, 처음에 이들은 가나안 사람들이나 북이스라엘의 난민을 의미하는 말이었지만, 점차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지만 야훼 종교로서 개종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로 변해갔다.
어떠한 사람이 게르가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브라함과 이삭이 식량 때문에 이집트로 이동한 것처럼 기근이 닥쳐 다른 나라로 가서 살게 되는 이유와, 국가의 멸망으로 이주한 것과 같은 정치적 문제가 주를 이루었는데, 이러한 게르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면서도 그 사회에 정착해야 했기에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고아나 과부와 같이 특별히 보호받아야 할 사람으로 간주되어, 신명기에서는 그들을 억압하거나 학대하는 것을 죄악시하였고 재판에서 공정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신 1:16) 또한, 게르는 이스라엘의 언약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져 유월절(민 9:14)과 맥추절, 초막절(신 16:14)과 같은 다양한 제의 행사와 상황에 초대되었으며, 매 3년마다 모여진 십일조의 수혜대상으로도 포함되었다.(신 26:12)
이렇듯 게르에 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배려는 그들도 애굽과 출애굽의 기간 동안 긴 방랑의 시간을 가졌음과 동시에, 약자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행동과 명령에 근거한 행위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방인으로서 그 나라에 소속되길 원하는 이들을 이스라엘은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며, 오히려 그들에게 손길을 건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이 이방인들을 위한 여러 사건들을 인물들을 통해 알아보려고 한다.
2) 구약인물을 통한 다문화
① 라합
여리고성의 기생이었던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꾼에게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고 그들을 숨겨주게 되는데, 후에 그녀는 두 정탐꾼 중 한사람인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고 예수님의 족보를 이루는 한 사람이 된다. 이러한 라합의 사건은 죄의 공간에 살고 있는 이들이라 하더라도 야훼에 대한 올바른 믿음과 이로부터 기인한 편입된 이들은 헤렘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호수아 9장에서 그려지는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이방인들에게 전도를 행할 때 그들에 대해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② 보아스
라합의 아들인 보아스는 귀환 이주자로서의 지위가 베들레헴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커다란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룻을 나오미의 며느리로 인정하였고, 고엘의 역할과 시형제 결혼 상대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여 룻으로 하여금 귀환 이주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룻을 인도했다. 룻기에서 표현되는 이러한 귀환 이주 전승은 한국으로 이주하는 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③ 하갈
창세기 16장에 등장하는 하갈은 애굽 여성으로 아브라함의 여종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아브라함의 첩으로 들어가며 신분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비록 사래에게 학대를 받다 도망쳐 광야로 도망치게 되지만, 그곳에서 하갈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 `네 씨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약자인 하갈의 편에 서 계셨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가 오늘날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고통당하는 이주민들을 하나님의 심정으로 찾아 나서는 따뜻한 사랑의 실천자들이 되 야 할 것이다.
④ 요나
요나는 선민의식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원수였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의 백성들을 회개하게 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하는 행위를 인정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박 넝쿨의 사건을 통해 그의 사랑과 구속사역의 방향은 유대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까지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2) 신약 인물을 통한 다문화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역은 신약에서 역시 분명하게 제시된다. 예수님은 그가 행하신 지상 사역을 유대인들에게만 제한하지 않으셨다. 요한복음 4장에 제시되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는 앗시리아의 혼혈족의 신분으로도 하나님의 언약공동체에 들어 올 수 있다는 것을 시사 하고 있다. 이처럼 신약에서도 다문화에 대한 다양한 사건들이 제시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① 예수 그리스도와
다문화와 관련된 예수님의 행적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마가복음 7장 24-30에 제시되는 수로보니게 여인과의 장면을 살펴 보려한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달려온 여인은 유대의 입장에서 철저한 종교적 이방인이었던 헬라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예수 앞에 무릎 꿇고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귀신이 들렸나이다...` 라고 처절하게 간청한다.
이에 예수는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절망의 순간에 수로보니게 여인은 아랑곳 하지 않고 대담하게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대답한다. 이러한 그녀의 대답은 예수를 자신의 주로 이해하고 있다는 발언 이었고 이것은 예수님이 움직이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결국, 여인은 소원을 이루어 딸이 살아난다.
이러한 딸의 치유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는 항상 소외된 자의 편에 서있다는 것이 증명 되었고, 이방인이 고침 받은 이러한 사건을 통해 이방지역까지 하나님의 사역이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이방인의 믿음으로 예수님의 사역이 확대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이방인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자들이며, 그의 자녀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② 바울
바울은 사도행전 17장 26절에서 인류에 대해 한 혈통이라고 설명함으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것은 모든 인류는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기에 헬라인이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다는 당시의 믿음을 깨부수는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이러한 바울의 믿음의 행위는 은혜 안에서는 그 어떤 인종의 우월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다문화에 대한 바울의 또 다른 장면은 루디아에서 나온다. 바울이 빌립보에 도착하여 강가에 나가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 중에 루디아란 여인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자기 집 사람들을 불러 함께 세례를 받는다. 또한 그는 바울이 자기 집에 유하도록 강권하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 빌립보 교회이다. 그녀는 바울의 선교를 위해 계속해서 일하고 헌금하여 조용히 빌립보 교회를 섬기는 바울의 커다란 동역자가 된다.
이방인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나아가는 이들을 도운 그녀의 이러한 모습과 이방인들에게 꾸준하게 복음을 전한 바울의 모습은 오늘날 선교의 현장에 서게 된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③ 디모데
디모데는 헬라인인 아버지와 유대인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행 16:1) 바울이 혼혈인인 그를 제자로 삼은 이유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였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가 유대와 헬라라는 두 가지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혼혈인이란 다문화 사회에서 혐오와 미움이 아닌, 양쪽의 문화를 연결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④ 베드로와 고넬료
사도행전을 보게 되면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베드로를 보내 복음을 전하신 사건이 나온다.
로마의 백부장이었던 고넬료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와 베드로를 찾으라 하며, 다음으로 베드로가 기도하는 중에 정결하지 못한 것을 먹으라는 환상을 계속해서 보게 된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를 데려가려 왔고, 고넬료의 집에서 말씀을 듣던 이방인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게된 베드로는 그들이 이방인이지만, 유대인에게 했던 그대로 세례를 베푼다.
이것은 이방인들과 상종하지 말라는 율법의 장벽을 무너뜨린 행위였다. 하나님이 베드로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편견을 깨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오늘날 무의식적으로 무수히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이 아닐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3. 나가는 말
다문화 사회는 우리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현실로 다가왔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문화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 보다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성서에서 보여주는 이주민들에 대한 대응방식에서 어떻게 바람직한 다문화를 이루어 나가고, 바람직한 윤리를 형성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인 다는 것은 말 그대로가 장점과 단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문화사회가 가져다주는 유익들을 극대화 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것에 한발자국 내딛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동일하게 사랑받는 인간이라는 것에 입각한 인권이다. 이처럼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고 있듯이 이주민들을 돌보고 배려하는 것은 경제나 사회와 같은 여러 삶의 영역에서 공평한 관계를 만들어 갈 때 우리는 진정한 다문화 사회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하경택 논문
<구약성서의 관점에서 본 다문화 사회와 대응방안-<노크리>와 <게르>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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