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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회의 성령세례론 본문

신학

성결교회의 성령세례론

유기농막대사탕 2023. 9. 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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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성령세례란 기독교의 교리로 성령이 사람의 심령에 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회개하여 중생케 하는 성령의 사역을 말하는데, 이러한 성령세례에 대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주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령세례는 교회의 성례전을 통해 받게되는 것 인가? 둘째, 성령세례는 기독교인이 되는 것과 구분되는 별개의 경험인가? 셋째, 성령세례의 첫 증거는 방언인가? 넷째, 성령세례에 대한 바울의 신학과 누가의 신학은 동일한가? 다섯째, 성령세례와 성령 충만은 동일한가?

이와 같은 주제들에 대한 대답은 교단마다 자신들의 전통과 교회의 경험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기에, 이번 글에서는 커다란 흐름으로 경험 중심적 복음주의 전통의 성령세례론과 교리 중심적 개혁주의 전통의 성령세례론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 성결교회의 창립자인 마틴 냅의 성령세레관을 고찰하고 난 후,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성령세례론과 그것이 어떻게 경험되고 실제 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I. 성령세례론의 두 흐름

 

1. 경험 중심적 복음주의 성령세례론

먼저 경험 중심적 그룹에서는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은 구속론의 차원에서 유일회적으로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도 일어나야 하고 또한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경험적 사건임이 강조됩니다. 이 그룹의 주요 특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령세례는 중생 이후에 오는 두 번째 은총으로서 중생 시 임하는 성령의 역사와는 다르다. 대상은 오직 중생한 자이다. 둘째, 성령세례의 목적은 이미 구원 받은 자에게 더해지는 성화 또는 능력에 있기 때문에 구원과 직접 연관이 없다. 셋째, 성령세례는 성령을 처음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 성령세례는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넷째, 성령세례는 중생 시의 성령의 역사와는 그 성격이 질적으로 다르다. 다섯째, 중생 시 영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때와는 달리 성령세례는 가시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경험적 사건이다. 여섯째, 성령 충만은 성령세례를 경험한 이후에 따라온다.

이와 같은 여섯 가지의 특징들을 경험 중심적 그룹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2. 교리 중심적 개혁주의 성령세례론

이어서 살펴볼 교리 중심적 그룹은 유럽의 개혁주의 전통을 그 신학적 배경으로 하여 형성되었습니다. 이 그룹은 또다시 그 흐름이 두 개로 나뉘는데 하나는 중생과 성령세례를 하나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둘로 구분해서 보는 것입니다.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일한 사건으로 보는 그룹에서는 성령은 중생 시에 믿는 자에게 내어주는 바, 이를 성령세례라 할 수 있으며, 이는 단회적인 것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중생 이후에 체험하는 성령의 특별한 체험을 성령세례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은 잘못이며, 오히려 중생 이후의 성령체험은 성령 충만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와 달리 중생과 성령세례를 같은 사건으로 보지 않는 그룹은 성령세례를 고린도전서 1213절에 근거하여 성령에 의하여 베풀어지는 성령의 기본세례와 요한복음 133절을 근거하여 예수에 의하여 베풀어지는 것으로서 신자들이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사는 자들을 통해 특별한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 능력을 부어주는 성령의 능력세례로 나눈 후, 중생은 성령의 기본세례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II. 마틴 냅(Martin Wells Knapp)의 성령세례관

다음으로는 성결교회 창립자 중 한 명인 마틴냅의 성령세례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냅은 오순절의 성령세례를 `번쩍하는 번개불` 혹은 `오순절적 순결과 능력의 폭풍`으로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오순절적 능력으로부터 빛과 사랑과 능력의 영적 세계가 폭발적으로 나타났는데 이로써 수많은 사람들은 촛불로 밝히던 옛 역마차와 같은 제 형식과 의식 그리고 메마른 신조와 낡은 경험들을 벗어버리고 온전한 구원이라는 환하게 비추는 전동차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냅의 이러한 말은 그가 성령세례를 영적 세계에서 일어난 하나의 혁명과 같은 현상으로 보고있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성화는 이러한 성령세례의 열매인데, 이는 예수께서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심으로써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처럼 예수는 성령세례자이며 동시에 성화자이기 때문에 그에게 성령세례를 받은 자는 오순절적 성화를 체험하게 되고 또한 오순절적 성화를 체험한 자는 예수로부터 성령세례를 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주장은 마틴 냅에 의해 창시된 만국 성결교회 헌장 제822`완전 성화는 그리스도에 의한 성령세례이다.`와 제1126`성화는 성령과 불에 의한 세례와 동일하며 동시적이다` 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III.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다음으로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입장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헌법에는, “성결이라 함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신의 세례를 받음이니 곧 거듭난 후에 신앙으로 순간에 받을 경험이다. 이 은혜는 원죄에서 정결하게 씻음과 그 사람을 성별하여 하나님을 봉사하기 위하여 현저한 능력을 주심이다라고 되어있습니다. <헌법>62항에서도 역시 성결의 체험이란 신자가 받을 성령세례를 가리킨다고 하였습니다.(1:5, 2:1-4; 12:14).

이와 같은 성령세례의 이해를 토대로, 한국 성결교회에서 믿고 또 가르쳐 온 성령세례의 경험을 정리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성결교회를 대표하는 신학자인 조종남, 한영태, 박명수가 말하는 성령세례의 경험과 관계된 성결교회의 네 가지 전통적 신념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역사적 관점에서의 이해와 함께 현실적 적용의 차원을 다루어 보려 합니다.

 

첫째, 중생과는 구분되는 순간적 경험이다.

`성령세례를 받으라`는 표현을 교회 내의 이미 중생한 신자들에게 사용하는 것이 과연 적절하지에 대해서는 신학계에서 찬반양론이 분분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정통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장로교 신학이 오랫동안 한국 신학계를 주도함으로 인해, 성령 은사의 중단성과 함께 중생과 연관하여 성령세례의 단회성을 강조하는 성령론의 노선이 그 기세를 떨쳐왔습니다. 그러나 성결교회의 성령세례론은 경험 중심적 복음주의에 속한 것으로서 그 역사적 전통성을 다음과 같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존 웨슬리의 그리스도인의 완전 교리로부터 출발하여 19세기 웨슬리안 성결운동을 거쳐 오늘의 한국 성결교회에까지 그 맥을 형성한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전통은 단지 웨슬리안 성결론자들만의 독백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19세기의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에서도 역시 이 전통은 보편적으로 강조되고 있었습니다. John R. Rice는 중생과는 구별되는 성령세례의 경험을 강조한 웨슬리안 전통에 속하지 않는 유명한 인물들로서 무디와 스코필드 같은 인물로 예를 들었습니다.

성령세례에 관해 정교회의 전통적인 신념으로, 일반적인 정교회의 신념에 의하면 성령은 이미 물세례 받은 신자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을 더 충만히 받기 위해서, 즉 다시 한번 성령으로 새롭게 나기 위해, 고통과 시련을 인내하거나 그들의 사역으로 믿음을 연단 받는 일은 여전히 가능합니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 크리스천의 삶에 있어서 두 번째 은혜의 단계는 바로 성령세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구주와 주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내가 살고 있다고 하는 더욱 큰 확신을 성령의 조명을 통해 의식하는 관문입니다. 이 체험에 의해서 성령을 받는 자는 성령에 의해 인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교회의 역사성에 근거한 `제 이차적 축복`으로서의 성령세례에 대한 전통 역시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노선에 서 있는 이들에게 풍성한 교회사적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중생과 구분되는 성령세례의 경험을 강조하는 노선은 얼마든지 그 신학적 전통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둘째, 정결과 능력을 얻는 경험이다.

웨슬리로부터 출발한 완전 성화의 교리는 순간적인 체험을 통하여 신자는 마음속에 남아있는 죄성으로부터 정결하게 씻음을 받게 되고, 이 원동력은 그리스도를 위한 사랑과 봉사의 승리하는 삶을 가능케 해준다고 하였습니다. 이 같은 전통적 입장에 새로운 근대 웨슬리안 성결 운동의 선구자인 Phoebe Palmer를 통해 `능력`으로서의 성령세례에 대한 강조가 많이 부가되었다. 이렇게 하여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특성은 `정결과 능력의 성령세례`를 강조하는 데서 찾게 된다.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성령세례론이 한국교회, 특히 초기 성결교회에 접맥되는 과정에서 크게 영향을 주었던 책은 토마스 쿡의 <New Testament Holiness> A, M. Hills<Holliness and Power>, George D, Watson<A Holiness Manual>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한결같이 `정결과 능력의 성령세례`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할 뿐만 아니라, 정결에 대한 해석에서도 근대 웨슬리안 성결 운동의 전통적인 `죄성제거설`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죄성제거설`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핵심에 속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영적 사실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6:1-7; 5:25, 6:14). 이 사실에 대해 믿음으로 고백하게 될 때 당연히 `죄성제거설`이 성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험의 차원은 뒤의 문제이며, 우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승리의 사실을 바로 깨닫고 고백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실제적으로 죄의 유혹을 지속적으로 이기는 삶의 경험은 우리가 이 영적 사실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정결과 능력의 성령세례`는 성결교회 내에서 김상준, 이명직, 김응조 등의 저술들, 그리고 <활천>,<성결> 등의 정기간행물들을 통하여 그 전통이 계승되었습니다. 현재 중생 이후의 `제 이차적 축복`으로서 성결 혹은 성령세례, `죄성제거설`로서의 성결론, 그리고 `정결과 능력의 성령세례`관념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구세군, 나사렛성결교회 등 한국의 웨슬리안-성결 그룹 교단들의 공식적인 교리로서 채택되어있습니다.

 

셋째, 성령세례의 경험의 차원은 반복될 수 있다.

한영태는 성령세례가 구속사적인 면에서는 반복될 수 없는 사건이지만, 그러나 경험적인 차원에서는 신자들의 경험 속에 반복되어지며, 이 체험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John R. Rice는 세례란 담그고, 가라앉히고, 덮고, 압도하고, 적신다는 등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서, 그것은 `시초`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번 성령세례 받은 사람이 전에 받은 것처럼 두 번째 성령세례를 받지 못할 논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박명수는 성화의 단계가 중생과 성결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좋은 구조이지만, 이것을 지나치게 도식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개성을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모든 종교 체험을 언제나 두 단계로 고정시켜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사실의 차원과는 달리 경험의 차원에서의 성령세례는 얼마든지 한 번 이상 경험될 수 있습니다. 물세례야 당연히 그리스도인 된 표식으로서 일생에 단 한 번 받으면 충분합니다. 두 번 이상 재확인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세례의 경우를 볼 때, 먼저 영적 사실의 차원에서는 일회적으로 중생과 연관지어 간결하게 설명을 마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 경험의 차원에서는 반드시 일회적이어야 한다고 제한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례라는 말의 용법상, `성령에 충만히 세례 되었다`, 또는 `성령세례를 받았다`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쓰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넷째, 분명히 인식될 수 있는 경험이다.

성결교회의 전통은 육감적 체험이라든가 방언이나 예언 등의 `성령의 나타남`으로는 성령세례 받은 증거를 확인하지 못 한다는 입장에 분명히 서 있습니다. 이 같은 거부의 경향은 1930년대 백남주, 유명화 등의 신비주의 운동과 방언을 강조하는 오순절 주의자들의 내한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1960년대 이후에는 순복음 교회 성령 운동의 일부 극단적인 면에 대한 반대와 신학적 비판으로 인해 고조 되었습니다. 순복음교회의 성령 운동은 육감적 또는 가시적인 체험을 중시하는 경향성을 확대함으로 인해, 자칫하면 말씀에서 떠난 신비 체험 중심의 신자들을 양산 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성결교회는 성령세례를 경험했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했을까요? 물론 죄에 대한 자백과 온전한 헌신은 이 경험을 얻기 위해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신자 편에서의 할 일입니다. 그렇게 한 이후에 이 경험을 얻는 순간을 인식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을 믿음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때 신자의 영혼 속에 `성령의 증거`가 뚜렷이 인식됨으로서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충만한 확신을 얻게 된다는 것은 웨슬리 이후 웨슬리안 성결론 전통의 확고한 신념인 것입니다.

 

2. 성결론, 현대 성령론 안에서의 성결교회 성령론의 위치와 의의

 

성결교회의 네 가지 전통적 신념에 이어, 다음으로는 성결론, 현대 성령론 안에서의 성결교회 성령론의 위치와 의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성령세례는 그 행위의 주체가 예수일 뿐만 아니라, 성령의 주된 사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증언하는 것이므로 성령세례를 통해 신자와 신자 공동체의 정체성은 오직 예수에게 있음을 확인케 합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신앙과 교회 공동체의 정체성이 도전받고 있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성령세례는 기독교의 자리매김을 확고히 해주는 견인차와 파수꾼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둘째, 성령세례는 신자와 그 공동체 안에 내적으로 임재하는 성육신적 사건으로서의 지대한 신학적 의의를 지닙니다. 이는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난 사실을 성령의 내주하심과 동일하게 생각함으로써 오는 신앙생활의 많은 혼란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합니다. 우리가 필요해서 성령을 부를 때 항상 오시는 것을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착각하고 있는 한, 성령은 우리 안에서 주인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고로 우리의 삶과 인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성령세례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높은 뜻을 굴절시키고 거역하는 모든 인본주의적 공격에 대해 힘 있게 대항하도록 윤리적 실천의 능력을 부여합니다. 이는 개인의 대사회적 윤리실천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서 교권주의와 세속주의에 물들어가고 있는 교회를 개혁하고 갱신하는 일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세례가 지니는 신학적 의의는 우리가 우리 안에 성령이 내주하는 성전인 사실(고전3:16)을 확신케 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더욱 거룩한 데로 나가게 하며, 우리가 지체로 속해 있는 한국교회가 참된 예수 공동체의 본질을 지켜나가도록 하는데 기여 할 것입니다. 성령세례가 중생 시에 임하든, 중생 이후에 받든지 최종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성령의 성육신으로서의 오순절적 성령세례가 신자와 교회 공동체 안에서 경험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성결교회 성결론의 가장 큰 강조점은 순간적 성령세례라는 경험의 중요성에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초기 성결교회의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은 한결같이 성령세례 또는 성결의 순간적 경험에 대한 강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G. D. Watson과 같은 선교사들, 그리고 김상준, 이명직 등을 비롯한 많은 성결교회 목회자들의 저술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이 은총의 순간적 경험이 소개된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관점에서 성결교회 신학자 전성용은 말하기를, “순간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강조는 성결교회의 고귀한 전통으로서 계승되고 더욱더 강조되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한국교회와 신학계는 혼잡한 성령론 논쟁으로 인해 큰 곤란을 겪어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가 절실히 요청하고 있는 것은 성령론 논쟁의 갈등을 극복하고 이해와 일치의 정신 속에서 도래하는 복음적 성령의 능력인 것입니다. 앞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결교회 성령세례론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통해 정리된 성령세례 경험의 네 가지 특징은 교회사적인 전통성과 함께 그 신학적 합리성을 충분히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제 성결교회는 교단의 전통적인 성령세례 교리가 지속적으로 그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 능력의 경험에 대해 연구하며, 또 이를 힘껏 전파하는 일에 더욱 전력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문헌>

 

최인식. “성령세례의 신학적 의의에 대한 고찰-마틴 낸과 윌리엄 갓비를 중심으로”, 2012

 

배본철. “기독교대한 성결교회의 성령세례론에 대한 역사적 고찰”,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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