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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상숭배인가(신약편) 본문

신학

무엇이 우상숭배인가(신약편)

유기농막대사탕 2023. 8. 2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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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에 나타난 우상숭배

 

데메드리오

 

데메드리오는 우상숭배에 필요한 물품으로 많은 돈을 번 이방인이다. 그는 그리스신화에서 사회의 질서를 관장하는 여신 데메테르를 섬기던 사람으로, 우상숭배를 위해 각지에서 아카데미 신전으로 몰려든 사람을 대상으로 장사했다. 그가 했던 일은 구체적으로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드는 은장색`(19:24)으로, 아데미 신전의 조형물인 은감실을 만드는 직공의 조합장 역할을 하였다.

승승장구하던 이들의 사업에는 문제가 생겼다. 소득이 줄고 은장색의 수입이 점점 감소한 것이다. 이에 조합장 데메드리오가 나서 수입 감소 원인을 규명하도록 했고, 결국 이러한 원인이 당시 에베소 지방에 머물며 복음을 전하고 있었던 사도 바울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두란노서원의 강론과 회당강론 등 바울이 큰 능력을 행하며 우상숭배의 죄악성과 허탈함을 비판하자 회개하는 무리들이 점점 많아졌고, 이는 결국 데메드리오 같은 우상숭배 업자들의 생계를 위협하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러자 데메드리오는 은장색을 선동하여 반기독교주의자와 연합,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특히,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 연극장에 가두어 위협했지만, 그들은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오게 된다. 이처럼, 데메드리오는 종교를 이용하여 이익을 얻는 것을 업으로 삼아 살았기에 기독교를 박해하였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이를 이용하였고, 이는 결국 바울의 3차 전도여행에 활기를 주어 아시아 지역을 복음화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그의 삶은 우리가 하나님을 빙자해서 혹시 이익을 추구하지는 않았나, 되돌아볼 수 있게 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계획하심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점치는 여인

 

사도행전 16장은 바울이 마게도냐 빌립보성에 전도하던 중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다. 당시 바울이 활동하던 도시에는 귀신들려 귀신의 힘으로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여자가 있었고, 그녀의 배후에 주인 여러 명이 그가 벌어들이는 돈을 챙겨가고 있었다. 어느 날 바울이 기도하러가는 중에 그녀를 마주치게 되는데, 그는 곧바로 바울과 일행에게 `이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고 소리친다. 바울은 무시하려 했지만 이와 같은 일이 계속되자 바울은 괴로워한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왜 바울이 괴로워했냐는 것이다. 단순히 귀신들린 여자가 자신을 쫓아다니며 소리를 지르기에 괴로웠을 수도 있지만 바울이 계속해서 그녀가 외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는 그녀의 발언을 근거로 귀신을 쫓아낸 것을 보면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괴로워 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그녀의 발언이 복음의 중심된 이를 하나님에서 바울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지위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세가 선행될 때 가능한 하지만, 신앙의 중심이 그리스도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갔기에 바울은 고통스러워했다. 이것은 오늘날의 사회에서 돈을 좇고 육체를 쫓고, 쾌락을 쫓는 등 우리의 삶에 지나치게 침범해 있는 우상숭배들에 있어서 우리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나가는 말

 

성경이 말하는 우상숭배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자신이 섬기는 신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행위, 즉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숭배하는 행위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면서 다른 것을 섬기는 우상숭배다. 구약의 우상숭배는 대부분 두 번째의 경우에 속하며, 이것은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를 계속적으로 행할 때 그들의 사회에는 여전히 성전이 존재하고 있음에서 알 수 있다.

성경의 대표적인 우상으로는 풍요의 신인 바알과 아스다롯이 등장하는데 이스라엘은 이들만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김과 동시에 이들을 섬겼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모두 그들의 탐심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탐심은 성경에서 우상숭배로서 경고하는데, 이는 마음으로부터 생기는 욕심과 정욕을 제어하지 못하게 하여 그것을 따라 살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주마다 모여서 예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물질이 더 중요해지면 그것은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다. 또한, 물질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포기하거나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것에 메어 사는 것 역시 우상숭배다. 이렇듯 겉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면서 실제로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삶에 우리는 메어있다. 그렇기에 믿음이 중요하고, 그렇기에 올바른 교육이 중요하며, 그렇기에 우상숭배에 대한 기독교의 관심이 다시금 불타오르는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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